트럼프, 경유값 잡으려 대러 제재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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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유 가격이 갤런당 8달러까지 치솟자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대러 제재를 전격 완화하고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허용한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급등한 물류비와 농기계 연료비로 이탈하는 지지층을 붙잡기 위한 승부수다.
솔직히 이 대목이 가장 의아하다. 불과 한 달 전인 2026년 9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에너지 경제를 옥죄는 강력한 제재 법안에 서명했다. 그런데 10월 9일, 미 재무부는 내년 4월 7일까지 러시아산 경유 수입과 판매를 허용하는 임시 면허를 발급했다. 총 480만 톤 규모의 러시아산 경유가 미국과 세계 시장으로 들어오게 된 셈이다.
정책의 일관성이 사라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야당과 외교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열세에 놓이자 국가의 핵심 대외 안보 기조를 하루아침에 뒤집었다고 지적한다. 물가 안정이라는 국내 정치적 실리를 위해 외교적 명분을 양보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수를 둔 배경에는 미국 내 경유 가격 급등이 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경유 가격이 전쟁 전보다 70%가량 올랐고, 일부 지역에서는 갤런당 8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트럭 한 대를 주유하는 데 우리 돈 200만 원이 넘게 드는 상황이다.
경유는 화물차뿐 아니라 농기계의 핵심 연료다. 미국은 땅이 넓고 농장이 커 트랙터 등 농기계에 들어가는 경유량이 막대하다. 갤런당 6달러를 넘어서는 유가는 농촌 지역의 농장주와 농부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이들의 불만이 중간선거 표심 이탈로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빅딜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의 반발은 거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조치를 "푸틴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다시 열어주는 격이며, 끝내야 할 전쟁을 장기화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 시설을 공격해 경유 값을 올렸다며 책임을 돌렸다.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발언까지 해 논란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가 이미 떨어지고 있다며 비판을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이 2022년 러시아 침공 이후 유지해 온 에너지 수입 금지 조치를 스스로 깨뜨린 만큼, 국제 사회의 대러시아 경제 압박 전선은 급격히 약화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경제적 여력을 회복하면 전쟁을 더 오래 끌고 갈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러 제재는 늘 예측 불가능했다.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실제 조치만큼은 강력했다. 2025년 10월에는 러시아 최대 정유사 로스네프티와 루코일을 제재 대상에 올려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거래를 금지했다.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에 최대 100%의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지속하자 추가 관세를 매겨 정유사들이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이번 제재 완화는 이러한 강경책의 맥락에서 갑작스러운 유턴이다.
강력한 제재에도 시장은 교묘한 우회로를 찾아냈다. 러시아산 원유가 인도 정제소에서 가공된 뒤 서류상 '인도산'으로 둔갑해 서방 시장으로 유입되는 루프홀이 존재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후 유조선 수백 대를 동원해 해상에서 기름을 옮겨 싣는 '그림자 선단'도 제재를 피하는 데 동원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 제재를 강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이러한 우회로를 통한 공급 부족을 정면 돌파한 셈이다. 단기적인 유가 안정을 위해 러시아에 손을 벌린 행위가 향후 미국의 지정학적 협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